네모의 꿈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겉보기에 모순 같은 두 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깨어지는 것이고, 둘째는 지키는 것이다.
깨어지는 것은 모난 돌 같은 자아가 사회와 현실에 의해 깎이고 조각되는 것을 가리킨다. 낭만, 꿈, 이상, 용기 등 하늘만을 바라보며 날아오를 준비를 해오던 개인이 애석하게도 우리에겐 날개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땅에 발 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한계를 체감하며 전례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깨는’이 아니라 ‘깨어지는’ 이유는 언어 그대로 피동이기 때문이다. 둥글어지는 과정이다. 각진 존재는 사회에 소음을 일으키기 쉽다. 사회는 둥근 존재의 이점을 열심히 각인시킨다. 네모의 ‘꿈’인 이유가 있다. 현실에선 각진 존재를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우리가 무력함에 지지 않고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까닭은 깨어지는 과정 속에서 우리 존재를 지키는 방식을 가꿔나가기 때문이다. 어디를 더 깎고, 어디는 덜 깎고, 어디는 절대 깎을 수 없는. 내가 세상과 타협할 수 있는 지점과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지점들을 알게 된다. 그 와중에 내게 우선인 가치들을 깨닫게 된다. 내가 어떤 존재로서, 몇 개의 각을 가지고, 어떤 구가 되어서, 어디로 굴러갈지 마침내 질문하게 된다. 날아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코스를 어떤 페이스로 뛰는 마라토너가 될지는 결정할 수 있다.
두 과정 중 대체로 깨어지는 과정이 선행하는 듯하다. 사실 깨어져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연인에게 화목할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갈등 상황 중 그럼에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무게 차이가 있는 것처럼, 삶의 무상함과 현실의 냉혹함을 정통으로 직면한 상황 속에서 내 삶의 방향성과 오늘 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온실(청소년기)에서의 결정과 체급이 다르다.
세상이 말하는 ‘어른’은 잔뜩 깨어진 사람인 것 같다. 덜 아프려고 어른이 되는 것이겠지. 열심히 발버둥치다가 겨우 날아올랐는데 바로 추락하면 아플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여태껏 몇 개의 각이 깎여나갔을까. 계속해서 깨어지겠지. 깎이고 깎여서 반질반질한 은빛구슬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남들 몰래 숨겨둔 뾰족한 구석을 가진 어른이 되고 싶다. 세상이 뭐라고 하더라도 필요하다면 당당히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여유롭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뾰족한 못이 되고 싶다. 12년째 가장 좋아하는 말이 ‘낭중지추’라니, 아직도 날개에 미련이 있나보다.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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